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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1-27일자 기사 '어설픈 흙돌담, 왜 무너지지 않았을까?'를 퍼왔습니다.

[늘그막 백수들의 겨울여행3] 담양 소쇄원

 

▲ 소쇄원 흙돌담에 쓰여 있는 오곡문 표시 ⓒ 이승철

 

"담양에 와서 소쇄원 둘러보지 않고 그냥 갈순 없잖아?"

  

맛있는 대통밥 점심을 먹고 출발하자 일행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환벽당과 식영정을 둘러갈까 물으니 그냥 가자던 일행이다. 면앙정과 송강정을 연달아 돌아봐서 조금 싫증이 난 것 같았다. 그런데 소쇄원은 들러 가자는 것이다.

 

"소쇄원은 옛날 교과서에도 나왔던 곳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네?"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옛날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교과서에 소쇄원이 소개되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래서 일행은 소쇄원만큼은 꼭 둘러보고 싶은 것이었다. 소쇄원으로 향했다. 길가 오른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들어서니 좌우에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그러나 정작 소쇄원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나즈막한 산골짜기 개울가에 서 있는 허름한 옛 건물 몇 채가 고작이었다. 길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골짜기를 건너는 어설픈 다리를 건널까 하다가 지나치니 초가지붕 정자가 나타난다.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정자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가지붕 정자. 대봉대다.

 

 

▲ 소쇄원 대봉대 ⓒ 이승철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럼 봉황은 무엇인가? 옛 '산해경' 기록에 의하면 '동방 군자의 나라에 출현한 봉황은 먹는 음식이 자연의 법도에 맞을 뿐만 아니라, 저절로 노래하고 춤추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했다. 정자는 허술해 보여도 소쇄원 주인의 고상한 품격과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홍문관 대사헌을 지낸 양산보가 세운 원림이다. 양산보는 은사인 개혁파 거두 조광조가 훈구파의 모함으로 유배당하자 스승과 함께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눌러앉은 것이다. 한문자 '소쇄'란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대봉대에서 낭떠러지로 뚝 떨어진 개울 건너 내려다보이는 전각이 광풍각이다. 외나무다리 같은 어설픈 다리를 건너 내려선 곳이 광풍각. 소쇄원의 사랑방이다. 존경하던 스승을 잃고 세상에 대한 뜻을 접은 선비 양산보가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던 곳이다. 마루 아래 계곡은 오곡문을 통과한 계곡물이 거침없이 흐른다.

 

 

▲ 광풍각 옆모습 ⓒ 이승철

 

고풍스런 광풍각 마루에 누군가 칼끝으로 그어놓은 듯한 것은 장기판? 아니다, 그렇다고 바둑판도 아니고, 그래 바로 고누판이다, 낯선 모양이 또 하나 더 있다. 선비의 기개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기둥들 중에 향단이 허리처럼 날렵하게 굽은 기둥 하나, 그런데 그것 참, 왜 보기 싫지 않고 그리 잘 어울릴까? 부조화 속에 조화로다.

 

뒤로 난 쪽문을 나서면 높직하게 솟아 있는 정자가 제월당이다. 그 옛날 중국의 송나라 명필이었던 황정견이 주돈이(북송시대 명성을 날렸던 학자)를 가리켜 '흉회쇄락 여광풍제월'이라 한 기록이 송사 주돈이 전에 전하는데 '광풍각'과 '제월당'은 여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제월은 '비가 갠 뒤의 밝고 맑은 달'을 일컫는다. 제월당은 양산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던 곳이다. 높직한 토방 위에 기둥을 받치고 선 투박한 주춧돌들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 그대로여서 모나지도 두드러지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모양이다.

 

 

▲ 제월당을 찾은 여행객들 ⓒ 이승철

 

조광조 문하 양산보가 세운 멋스러운 원림

 

"허허 과연 이만하면 명승이 맞네. 헛소문이 아니었구먼."

  

소쇄원에 들어설 때만 해도 조금은 실망한 듯 보였던 일행이 마루에 걸터앉으며 감탄하는 말이다. 계절이 겨울이어서 더욱 그랬다. 골짜기 아래 쪽 대나무 숲이 청청하고 소나무들이 있긴 했지만 산골의 겨울풍경은 조금은 황량했다. 그런데 제월당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그게 아니었다.

 

발아래 광풍각 지붕너머로 바라보이는 대나무 숲이며, 골짜기를 타고 흘러온 개울이 대나무 숲 사이로 빠져드는 풍경이 그런대로 멋진 풍치다. 겨울 햇살이 밝게 비쳐드는 제월당 마루에 앉아 500여 년 전의 낙향선비 양반보를 그려보는 멋도 쏠쏠한 풍류였다.

 

"저쪽 오곡문을 보십시오? 계곡을 가로지른 저 담장이 아슬아슬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일행들보다 먼저 도착한 여행객 몇 사람이 반대쪽으로 돌아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에게 중년여성 한 사람이 계곡 위쪽을 가로막은 담장을 손으로 가리킨다.

 

 

▲ 대나무 숲길로 들어가는 소쇄원 입구 ⓒ 이승철

 

"담장 아래쪽을 보십시오. 비뚤비뚤 돌을 쌓아 담장을 받치고 있는 받침돌이 어설프지요?

그런데 저렇게 엉성해 보이는 돌담장이 어떻게 500여 년 동안 무너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왔을까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소쇄원에 들러 정자들과 주변 경치를 둘러보면서 위쪽에만 둘러있는 담장에는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담장 가까이 다가갔다. 담장은 붉은색이 감도는 황토와 돌을 섞어 쌓은 위에 기와를 얹은 모습이었다. 특별하다면 그 담장 벽면에 검정색 한문글씨로 오곡문(五曲門)이라 쓰여 있는 글씨가 조금 유별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모습을 발견했다. 담장이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는데 계곡 가운데 그 담장을 받치고 있는 단 한 줄의 돌들이 너무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안정감이 전혀 들지 않는 모습, 정말 엉성한 모습이었다. 폭우라도 쏟아져 계곡물이 세차게 흘러내리면 금방이라도 휩쓸려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 대봉대에서 내려다본 광풍각(앞)과 제월당(뒤) ⓒ 이승철

 

그런데 거의 500여년, 더구나 근년 들어 자주 퍼부은 집중호우를 어떻게 견뎌내고 저렇게

말짱할 수 있단 말인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흥미진진한 수수께끼를 푸는 소년처럼 주변과 계곡을 살펴보았다. 담장 끝 쪽 골짜기 길이 열려 있을 뿐 눈에 확 띄는 그 무엇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곡물이 넘쳐 열린 길 위로 흘렀다면 담장은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하! 바로 저거야, 계곡 물길에 장애가 되는 것은 저 한 줄의 담장 받침돌 밖에 없잖아요?"

 

일행 한 사람이 손뼉을 탁 친다. 바로 그것이었다. 담장 밑 계곡이 넓고 높게, 그리고 아주 시원하게 뻥 뚫려 있었다. 담장은 그냥 경계표시에 지나지 않았다. 뻥 뚫린 담장 밑 계곡으로는 황소라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넓고 크게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계곡물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니 비록 어설퍼 보이는 담장 받침도 무너지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랄까? 마치 치마 걷어 올린 여인네의 종아리, 흙돌담의 모습이 그랬다. 요즘이라면, 아니 그 시절에도 어느 마음씨 좋은 양반 댁이 저렇게 담장 밑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었을까? 꼭꼭 닫아 가두는 것이 담장의 역할 아니던가. 그런데 제 가랑이 활짝 열어 가랑이 사이로 산바람, 시냇물, 온갖 짐승들까지 드나들게 만든 저건 담장인가? 문인가? 참으로 놀라운 발상과 배짱의 소산이다.

 

 

▲ 뻥 뚫린 계곡 위에 놓인 엉성한 받침돌 위에 걸려 있는 담장 ⓒ 이승철

 

500년을 견고히 서 있는 담장과 오곡문

 

요즘의 담장, 철옹성처럼 빈틈없이 안과 밖을 차단한 그런 담장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저 경계표시, 아니 어쩌면 담장의 역할보다 멋스러운 모양으로 그냥 쌓아 놓은 작은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 그런 담장이었다. 참 너그럽고 소탈한 모습이다. 활짝 열려 있었던 양산보라는 주인의 마음을 닮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경계가 열려 길이 되고 장애가 막히지 않아 길이 된 소쇄원 오곡문과 흙돌담, 흐름을 가로막지 않으니 무너지지 않고, 경계는 있으되 장애가 되지 않는 담장, 그 담장에서 막히지 않은 참다운 세상을 보고 인생을 배운다. 바로 소통이었다. 요즘 어느 일방의 꽉 막힌 소통의 답답함이 소쇄원 오곡문에서 시원하게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고 배웠던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기대했던 것만큼 대단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여성 여행객이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찬찬히 살펴본 오곡문과 흙돌담이 찬바람 부는 겨울 담양여행의 백미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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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01-10일자 기사 '동백나무 숲에 '풍덩', 명품섬 내도 탐방기'를 퍼왔습니다.

 빛이 신비로운 섬, 내도

 

‘내도 가는 배표, 여기서 사나요?’

 

‘탐방하러 오셨습니까?’

 

평범한 질문에 되돌아온 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탐방’이라니, 10년 넘게 국립공원을 다녔지만 매표원에게선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내도행 배표 매표원이자 내도호 선장인 김명규 님은 그렇게 대답했다. 관광도, 답사도 아닌 ‘탐방’이라 했다. ‘탐방’은 국립공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국립공원에 오는 사람은 탐방객, 국립공원에 난 길은 탐방로, 국립공원을 안내하는 곳은 탐방안내소,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사무소는 탐방지원센터 등으로 부른다.

 

내가 국립공원에 있음을 알려준 것은 안내판이나 현수막이 아니라 ‘탐방’이란 단어였던 만큼, ‘탐방’이란 매표원의 말 하나로 내도는 나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섬으로 되어 버렸다.

 

 

↑ 몽돌로 인해 더 진한 빛깔을 간직하게 된 내도 앞 바다.

 

 내도는 섬의 섬이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섬 중 해안선 길이가 가장 긴 섬이다. 800리에 달하는 해안선 길이는 지리산 둘레와 맞먹는다. 거제도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는데, 내도는 거제도에 달린 그러한 섬의 하나로, 말하자면 섬의 섬인 셈이다.

 

내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배편인 내도호는 허리를 곧게 펴기 힘들 만큼 작은 배다. 배가 작으니 바닷물의 흐름이 그대로 전달됐다. 나룻배에 타고 노를 젓는 느낌이었다. 내도호와 함께 바다가 코앞에서 흔들렸다.

 

거제 구조라항을 떠난 내도호는 끈으로 연결된 듯 스르르 움직였다. 배 한편에 앉아, 바다구나, 비취색 물빛을 하고 있으니 깊겠네, 햇살 받은 바닷물은 따뜻할 거야, 뱃멀미를 하면 어디다 토하나 등 잡스러운 생각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벌써 내도라고 한다. 배 안을 살피기에도 부족한 시간, ‘순간이동을 했나?’ 하고 벙벙한 속에서 내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도는 서울시청 앞 광장의 6배쯤 되는 크지 않은 섬이다. 한때에는 22가구, 50여명이 살았고, 구조라초등학교 내도분교도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1명이고, 2년마다 신입생을 뽑았던 내도분교 이야기는 지금보다 가난하고 힘겨웠던, 이제는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리운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내도에는 12가구, 18명이 살고 있다.

 

내도는 섬 전체가 식물원으로 알려진 외도 옆에 떠 있는 섬이다. 선착장이 있는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리(舊助羅里)에서 바라볼 때 바깥쪽에 있는 게 외도(外島), 안쪽에 위치한 게 내도(內島)다.

 

내도와 외도는 전설도 공유하고 있는데, 옛날 대마도 가까이에 있던 외도(남자섬)가 구조라 마을 앞에 있는 내도(여자섬)를 향해 떠오는 것으로 보고 놀란 동네 여인이 ‘섬이 떠 온다.’고 고함치자 그 자리에 멈췄다고 한다. 전설은 또 다른 전설로 이어져, 동네 여인네들 모두가 잠들면 내도를 향해 떠오는 또 다른 섬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다.

 

   

내도에서 만난 빛은 귀하고 신비로웠다

배에서 내린 나는 선착장과 선착장에 연결된 방파제, 선착장 뒤 펜션을 바라보며 적잖이 실망했다. 김명규 선장이 말한 ‘아시아의 아마존’하고도, 은근히 상상했던 작고 소박한 섬하고도 거리가 먼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 내도 숲 초입에는 동백나무와 삼나무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

 

선착장에 나온 최철성 자치위원장(55)에게 우선 섬을 돌아보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마을, 섬 전체가 사유지인 땅, 오랜 세월 사람이 살고 있는 섬에 특별한 기대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냥 그렇고 그런 섬일 거라고 미리 스스로를 위안했다.

 

내도 숲은 방파제를 왼쪽에 두고 5분쯤 걸으니 들머리가 나타났다. 내도 숲은 동백나무로 시작해 소나무로 끝난다. 동백나무 사이사이 감탕나무, 까마귀쪽나무, 육박나무 등 상록활엽수도 보이지만 그러곤 또 다시 동백나무다. 바다도 동백나무 사이로 보이고, 새도 동백나무에서 울고, 고라니도 동백나무를 헤치고 뛰어간다. 동백나무의 심연, 빽빽한 동백나무는 하늘도, 세상도 시야에서 차단한다.

 

그래서 그런가. 동백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빛답게 환하고 눈부셨다. 내도 동백나무 숲에서 빛은 귀하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동백나무의 정글인 내도 숲은 생태적 가치를 떠나서도 ‘아시아의 아마존’이라 부를 만한 묘한 매력이 있었다.

 

 


↑ 동백나무 숲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귀하여 더욱 신비롭다.

 

국립공원이긴 하지만 국유지도, 특별한 보호지구도 아닌 내도 숲이 황홀한 동백나무 숲으로 유지된 이유가 뭘까?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을 듯 했다.

 

‘동백은 가지가 옆으로 퍼지잖아, 가지가 많은 데다가 단단하여 땔감으로는 좋은 나무가 아니야, 땔감으로 안 쓰다 보니 땔감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지, 뭐 특별한 건 없어.’ 마을 어르신은 신성함을 말하지 않았다. 살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내도 숲에서 느껴진 자유로움과 충만함은 법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 보전한 숲이기 때문인가 보다.

 

동백나무 숲이 끝나면 소나무 숲이 나온다.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참식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보이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외도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내도 숲은 천천히 걸어 2시간쯤 걸린다. 2시간 동안 원 없이 동백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 내도다.

 

동백섬이라 이름 붙여진 곳도 있고, 동백섬을 수식어로 달고 다니는 섬도 있지만 동백꽃이 피고 지는 춘삼월에는 그런 섬보다 오늘 와 본 내도에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여기서 봐야 제 맛이 날 것 같았다. 내도는 그렇고 그런 섬이 아니었다.

 

 

 10년 후 내도는 어떤 모습일까?

내도선착장엔 ‘자연을 품은 섬, 내도’란 돌비석이 있다. 돌비석은 내도가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명품섬 BEST 10’에, 그리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추진하는 명품마을에 선정되며 일어난 작은 변화이다.

 

 

↑ ‘명품섬 BEST 10’과 명품마을로 내도 곳곳은 공사 중이다.

 

내도는 ‘명품섬 BEST 10’과 명품마을로 각각 25억 원, 5억 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지원액을 듣는 순간, 나는 내도가 어떻게 변할지 걱정스러웠다. 명품섬 추진으로 내도에 닥칠 변화, 난개발을 걱정하는 나에게 최 위원장은 내도 사람들도 떼돈 벌 생각이 있는 건 아니라고, 다만 섬을 지키며 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명품섬도 있는 걸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있는 그대로 유지하려 노력 중이라고, 다만 사람들이 와서 불편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고, 그러면 다시 올 것이고, 그래야 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 행정안전부 ‘명품섬 BEST 10’ 지원사업을 총괄하는 최철성 자치위원장.

 

내도의 동백나무 숲에 이미 마음을 빼앗긴 나는, ‘명품섬 BEST 10’도 좋고, ‘국립공원 명품마을’도 좋지만 돈이 섬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내도가 상혼에 오염됨 없이 동백나무와 더불어 언제까지고 소박하고 평화로운 섬으로 남아 있기를 빌면서 돌아 나오는 배에 올랐다.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 이글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소식지 2012년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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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2-01-27일자 기사 '‘4대강’ 크기는 댐인데 설계는 보 ‘모래성’…보강도 땜질만'을 퍼왔습니다.

암반 위 건설 안해 모래 유실되면 '두 동강'

물 속에 콘크리트 붓거나 자갈망태 넣기만 

 

얼마 전 생명의 강 연구단에서 4대강 사업현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보가 두 동강 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사실이 아니라며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는데요.

 

발표의 핵심내용은 '4대강 보'는 진짜 '보'였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규모로는 국제대댐협회에서 규정하는 대형 댐에 해당하지만 '보'로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발표자료를 통해 "4대강에 설치되는 대부분의 보 본체가 암반 위에 건설되지 않았고 물이 보 본체 아랫 부분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차수벽을 설치하였다."며 4대강의 보들이 '보'의 설계기준으로 건설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가래로 막아야 할 것을 호미로 막고 있다는 걸 뜻하는데요. 경악할 만한 일입니다.

 

 

 

▲일반적인 보의 설계도. 물은 왼쪽에서 흘러와 오른쪽으로 넘어간다. 보 본체와 상하류의 보호공, 아래의 차수공 등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져 있다. 그림=생명의강 연구단 발표자료.

 

 

▲구미보 월류부 표준단면도. 일반적인 보의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생명의강연구단 발표자료, 국토해양부

 

실제 설계도를 보면 1~2m 내외의 일반적인 보의 설계도와 높이가 11m인 구미보의 설계도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박 교수는 특히 이 보가 암반 위에 직접 건설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2번과 3번 부분에 해당하는 물받이공과 바닥보호공이 유실되더라도 암반위에 직접 건설되었다면 댐 하부가 유실될 걱정이 없지만, 암반 위에 짓는 대신 4번에 해당하는 차수공만 설치했다면 댐 하부가 유실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모래가 유실된 뒤에는 댐 스스로의 무게에 못이겨 아래로 꺼져버리는, 즉 두 동강이 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4대강 중 특히 낙동강은 모래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유실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지역에 따라 강 바닥에 20m 이상의 모래가 쌓여 있다고 합니다. 이는 창원에 강변여과수를 활용한 정수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증명합니다. 강변여과수를 통해 취수하기 위해서는 '25~50m 깊이에 물이 원활히 순환할 수 있는 자갈과 모래층이 발달한 지질구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양양 양수발전소 하부댐 기초공사 모습. 암반이 나올 때까지 굴착하고 틈새에는 차수재를 투입한 뒤 콘크리트를 타설했다. 사진=생명의강 연구단 발표자료.

 

발표자료는 기존 댐 설계의 예로 양양 양수발전소에 지어진 댐을 들고 있습니다. 이 댐은 기초공사에서 흙과 풍화토를 모두 걷어낸 뒤 노출된 암반을 물로 깨끗이 씻고 균열된 암반에는 차수재를 투입한 후 그 위에 콘크리트 타설을 하여 댐을 올렸다고 합니다.

 

물이 댐 하부로 흘러갈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보와 달리 댐은 엄청난 수압을 받기 때문에 댐 어디로도 물이 흘러나와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암반 위에 직접 건설하면 댐 하부가 깎여나갈 가능성도 줄어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연구단의 조사 결과 구미보, 칠곡보, 세종보 등에서 물받이공이 유실된 것입니다. 암반 위에 건설하지 않았다면 물받이공이라도 단단하게 설치하여 댐하부가 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도록 했어야 했는데 물받이공 조차 단 한번의 여름을 견디지 못하고 유실된 것입니다.

 

그래서 완공을 올해 6월로 또 다시 늦춰가며 '특수 콘크리트'를 직접 물 속에 붓는 등 부랴부랴 보강공사를 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지금이라도 땜질식 공사를 중지하고 가물막이를 다시 설치하여 보의 안정성을 정밀 재검토하고 그에 합당한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정고령보 보강공사 현장. 긴 시트파일(H빔 같은)을 강 속으로 박고 있다. 이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물받이공이 유실됐음을 의미한다. 보 본체 아래 모래의 유실방지 목적으로 설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생명의강 연구단 발표자료.

 

▲달성보 보강공사 현장. 보 아래 쪽으로 돌망태를 던져 넣고 있다. 저 형태의 돌망태는 4대강 지천 곳곳에 하상유지공 용도로 쓰인 적이 있으나 대부분 쉽게 유실이 됐다. 사진=생명의강 연구단 발표자료.

 

▲금강 유구천의 보. 보 아랫 부분이 역행침식으로 유실되며 내려앉았다. 4대강 보들이 만약 이처럼 내려앉는다면? 사진=채색.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보강공사를 하고 있는 곳들이 상당히 부실해 보입니다. 공사를 처음 진행할 때처럼 물을 뺀 뒤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한 뒤에 보강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물을 빼지 않고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달성보 현장에서는 자갈을 채워넣은 돌망태를 물 속으로 던져넣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보여드린 사진의 2번 내지는 3번 부분(물받이공 또는 바닥보호공)을 보강하는 것인데요. 저 돌망태는 작은 하천에서도 쉽게 유실됐습니다. 낙동강처럼 큰 강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강정 고령보 현장은 시트파일(H빔 같은)을 박아넣는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연구단이 현장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하상보호공 유실방지'로 설명했다고 했으나 연구단의 견해로는 '댐 본체 밑으로 유출되는 모래차단'이 주 목적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시트파일을 박는 위치상 하상유지공보다는 보 본체의 끝단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이곳에서는 수중으로 직접 콘크리트를 붓는 공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런 조사결과에 대해 정부쪽에서는 각종 해명자료를 내고 있으나 대부분 못미더운 것뿐입니다. 자료를 공개하고 검증을 받는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단순히 '문제가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은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의강 연구단이 제안한 대로 정부쪽 전문가와 민간쪽 전문가들이 함께 4대강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김성만(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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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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